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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Lacan + α

인간의 시작


인간이 '말하는 주체'로서 탄생하는 시점, 즉, 언어를 통과하는 순간, 분열적 주체로써(거세) 타자의 장에 기거하게 된다. 이는 한 개인의 장이기도 하다. 인간은 그러한 현실에 대한 어떠한 해석을 내리기를 원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근본적인 기억, 즉 현재의 자신을 낳게 '만든(만든 것이든 만들어서 주어진 것이든)' 과거로써, 자신에 대한 하나의 '신화'가 완성되는 순간 사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모두 '거세'된 존재로써 동일하지만, 이러한 신화에 따라 모두 다르게 된다. '거세'는 보편적인 것으로써 존재하고, 자신에 대한 해석은 하나의 '일반성'을 갖게 된다. 

개체로써의 인간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생각하는 과거(환상)에 대해서 이중적인 위치를 점해야 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서 어떤 근본적인 환상, 즉 본환상을 '구성'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본환상은 '참/거짓'의 틀에 있을 때가 아니라, '내/외'의 틀에 있을 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본환상은 '분석' 가운데서 만들어 진다. 그 본환상은 그 자신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여겨지는 무엇이다. 그것을 드러내는 듯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것의 내외를 보기 위함이다. 그것은 긍정되는 식으로 부정되고, 부정되는 식으로 긍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닿아야 할 곳은 바로 '실재'이다. 실재는 언어에 의해 '사라지는 무엇'으로, 역시 부정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없는 듯 있는 무엇으로, 인간의 모든 환상은 그 실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 실재는 바로 대상a로써, 부분 대상으로써 기능한다. 그것은 모두 있는 것이지만, 모두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것은 '본환상'을 가로질러, 자신의 욕망에 대한 본질을 어떤 언어적 내러티브, 혹은 무의식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실재에서 찾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든 욕망이, '대상 a를 둘러싼 움직임 자체'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에 따라 (본)환상에 좌우되었던 자신이, 그것을 전도하여, 그 환상을 주체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결국 정신분석적인 입구는 (그 외면과 달리) 어떠한 언어나 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언어나 목적은 '실재를 죽인'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가 실재를 대면할 경우, 우리는 '쾌락원칙'을 넘어서, 하나의 죽음으로 실재를 대할 뿐이다. 언어는 실재에 적합하지 않다. 실재를 대표하나 배제한다. 우리의 긍정은 고로 언어를 넘어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