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벨라스케스, <라스 메니나스>(1656) 일부
기본적으로 '환상' 개념 등을 통해서 보더라도, 정신분석학에서 주어지는 개인의 場은, 굉장히 주관적이다. 여기서는 주관성이 거의 완벽히 보장되고 있다.
64년 이전의 라캉의 '시선' 개념은, '주체'와 '대타자'의 상호관계에서 이뤄진다. '대타자가 나를 보고(regarde) 있다'는 인식은, 곧, 주체가 대타자를 '보고'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여기서 보는 행위는 상호적이다. 딜런 에반스의 <라깡 정신분석 사전>에서는 이 '시선(응시)'를 사르트르의 것과 동일하다고 본다. 사르트르는 대타자를 보는 것은, 주체가 주체를 인식하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64년 이후, 라캉이 '(작은) 대상 a'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주체와 다른 주체(대타자 같은)의 관계를 묵인하지 않는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 자체, '말하는 것' 자체를 대상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말하면, '주체', 인식하는 주체 외에는 모든 것을 '대상화' 시킨다는 것을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다른 것을 대상화하기 때문에 주체가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상 a'는 욕망, 향유의 대상을 말한다. '시선'이 대상이 된다는 것은, 시선 자체가 하나의 향유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시선욕동). 그래서 주체가 대상을 보고, 대상은 주체에게 '시선(응시)'를 (되)돌려 준다고 말한다. 성적인 리비도의 발산이, 그 충족으로 되돌려지듯, '보는 것'은 '시선'으로 되돌려진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말하면, '대상 a'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라캉의 상징계에서 실재로의 변화 과정에서, '대타자'가 '대상 a'로 변화했다는 것은, 대칭적 구조에서 비대칭적 구조로의 이행을 말하기도 한다. 주체에서 발해지는 것은 다른 주체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이는 철저히 다른 주체가 개인의 장에서 배제된다는 것(심지어 대타자는 없으므로("The Other is missing"))을 말하며, 그나마 있는 '다른 것'은 '대상'으로서만 작용할 뿐이다.
참고>
조엘 도르 지음, 홍준기 옮김, <프로이트 · 라깡 정신분석 임상>, 아난케
딜런 에반스 지음, 김종주 외 옮김, <라깡 정신분석 사전>, 인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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